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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창, 흥생양계장 대표

지금은 여행 중
쨍쨍 혹은 최순자, 세계 여행자

愛을 베푸는 인쇄!
전희찬, 인쇄피아 대표

Focusing on, Nonsurgical treatment
류종선 원장, 척추-관절 전문의, 고려정형외과

사진에 crazy한 존재감
정우영, 계명대학교 사진영상디자인학과 교수

Magic makes magics!
매직 부부, 김명규. 류정안

21세기 목동. 국민의 단백질에 책임진다!
이현창, 흥생양계장 대표

무에서 유로 바꾸는 게, 사회복지
김영달, 자원봉사능력개발원 이사장
 



 그는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가 아닙니다. 그는 그림을 배웠고 그림에 남다른 소질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화가가 아닙니다. 그는 상상초월의 사람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우리의 생각과는 약간 다른 분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일을 할까요? 바로 경북 의성군에 양계사업을 한답니다. 1960년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통을 이어온 흥생 양계의 이현창 대표입니다. 50년 넘는 역사 속에 깃든 양계 사업의 3대 대표이기도 하지요. 오늘은 특별히 경북 의성군의 이현창 대표와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글쓴이: 안녕하세요? 대표님!
이현창 대표: 예. 안녕하세요? 산다 기자님.

글쓴이: 이 양계사업이 굉장히 오랜된 역사를 가지고 있네요. 할아버지 시대 때부터  해 왔다고 하던데요. 그렇다면 대표님께서 이 사업을 언제쯤 본격적으로 시작을 하게 되었어요?
이현창 대표: 제가 이 양계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98년도라고 해야 됩니다. 제가  이렇게 경북 의성군으로 와서  양계사업을 시작한 것은 그 때쯤이었지요. 하지만  제가 정말 양계장 일을 했던 것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입니다. 할아버지가 하셨고, 또  우리 부모님을 이어서 양계사업을 하셨고, 그렇다 보니까 어쩌면 제가 어렸을 때부터  시작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할아버지는 1960년 6.25전쟁 이후 사회가 조금 안정되면서 부업 삼아 닭 수십  마리를 키우면서부터 현재는 약 100만수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저의 어머니 시대에 도 양계사업은 굉장히 힘드셨거든요. 지금 우리 시대처럼 양계사업이 기계화 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닭이 계란을 놓으면 우리는 그 것을 일일이 수작업을 하여야 했는데요. 그래서 그때 어머니 생각은 우리 아들들이 이렇게 힘들게 살지 않으려면 당신이 힘들게라도 일하되, 당신의 아들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시켜서 좋은 직 장에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결심이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우리 형제 3명 모두  다 양계사업에 뛰어들었지 뭐에요.

1980년 후반까지 힘들었던 양계사업은 1990년이 되자 양계사업에 하나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것이 바로 수작업으로 하던 양계사업에서 기계화가 된 양계사업으로 변화가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양계사업에만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물론 양계사업을 하고 있는 이현창 대표의 가족에도 아주 큰 갈림길이었습니다. 기계화가 된 양계사업이 한국에서 크게 각광을 받자 열심히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현창 대표는 학교 졸업을 끝내놓고 바로 이 흥생 양계사업을 새롭게 탄생을 시켰습니다.

 

글쓴이: 그렇다면 대표님을 비롯해서 3명의 형제들은 모두 이 양계사업을 한 것은 다만 부모 님으로  부터 물려받는 사업이겠네요. 또 다른 이 사업을 하게 된 계기라도 있나요?
이현창 대표: 솔직히 특별한 계기보다는 우리한테 이 사업은 낯선 사업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고 있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면 90년도 초반에는 취업하기가 굉장히 치열했고, 취직하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 밑에서 내가 모르는 일을 하는 것보다 내가 잘 아는 일, 우리 전통 대대로 내려오는 일을 하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사 업에 두발을 딛었지요. 저만 아니고 우리 삼형제 모두 그랬었지요. 그 때 당시 우리가  이 사업을 물려받았을 때는 이 양계사업의 규모가 20분의 1밖에 안됐어요. 그랬다가  20년 만에 외형을 많이 키웠지요.

글쓴이: 제가보기엔 양계사업도 양계사업이지만 대표님한테도 어렸을 때부터 꾸어왔던 꿈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이현창 대표: 네. 그렇지요.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어렸을 때는 꿈은  미술 선생님 이었습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었고, 그림에도 그럭저럭 소질이 있다 보니까 제가 제일 하고 싶었지요. 하지만 이렇게 사업을 하다 보니까 그렇게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지 네요. 지금은 닭과 계란이 제 삶이 되어 버리네요. (웃으면서) 그런데 한번 씩은 소품  위주로 그림을 그리곤 하는데, 만약 저한테 시간적인 여유가 생긴다면 그림 그리는  일도 본격적으로 해볼까 해요.
글쓴이: 이 양계사업을 오래하면서 때론 새로운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거나, 이 일이 지루하다 고 생각해 본적은 없었나요?

이현창 대표: 있지요. 그런데 싫다, 지루하다 보다는 매일 같은 일을 하다 보니까 어떤 때 새로운 것을 접해 봤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보지요. 그래서 지금 공부도 하고 있구요(경북대 농업경제학과 박사과정) 그러나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언제까지 이 일을 하고 그만두어야 되겠다 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란을 만지고, 닭과 같이 사는 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흥생양계장은 외형으로 봤을 때 규모가 굉장하고, 여기서 생산뿐만 아니라 유통. 납품까지 하고 있고, 대구. 경북 지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많은 소비자들의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협력업체로는 이-마트, 신세계 대백, CJ 푸드시스템, 농협 하나로 클럽, Everland Resort, Our Home, Food Merce 등이 있을 만큼 어느 정도의 신뢰를 구축할 만큼 성장을 해왔습니다. 흥생 양계사업이 이렇게 성장해 가는 데 있어서 이 삼형제의 노력과 부지런함이 주요 요소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품질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과거에는 계란이 농산물이었다면, 지금은 점점 계란이 식품화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농산물이었을 때는 덜 깨끗하고 덜 청결해도 되겠지만, 식품화가 되어 가니까 무엇보다도 청결이 우선이며, 위생적이어야 되고, 그만큼 신선도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에 신경을 쓰는 데 있어서 흥생 양계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현창 대표에 의하면 의성 흥생 양계만 해도 닭이 50만 마리가 있답니다. 이 삼형제는 의성, 경주, 영천 이렇게 세 군데에 걸쳐서 양계장을 성공의 길로 이끌어 왔습니다.

 

글쓴이: 대표님께서 이 양계사업을 하면서 이런 부분에 있어서 이 일을 하는 것이 뿌듯하다거 나 아니면 바람을 느낀다거나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습니까?
이현철 대표: 일단 저는 소비자들에게 품질 좋고 안정적인 식품인 계란을 제공하는 데 있어서  매일 보람을 느끼고, 매일 뿌듯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저한테 이렇게 묻지요.“그 돈 들여서 왜 닭을 키우냐” 하면서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우리 같은 삶은 달걀이 있으니까 당신이 저렴하게 달걀을 먹고 있다고요.” 그러니까 그만큼 소중하고 보람 있다는 것이지요.
글쓴이: 이렇게 양계장 사업이 이현창 대표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인가요?

이현창 대표: 저한테 양계사업은 뭐라고 말할까요? 갑자기 어려운 질문을 하니까 뭐라고 해야  될까요? 음.. 저한테 양계사업은 한 마디로 “천직” 이지요. 저만 아니라 우리 모든  
가족에게 있어서 양계사업은 하늘에서 정해진 일인 것 같아요. 우리 가족이 이 일을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신기한 것 또 하나 있어요. 저는 1969년생이니까 닭띠거든요. 닭띠에 태어났고, 또 하나 신기한 게 뭔지 아세요? 바로 제가 새벽 4시에 닭이 울 때 태어났다는 거지요. 저랑 닭이랑 굉장히 인연이 깊은가 보네요. 닭이랑 인연이 깊으니까 이렇게 양계사업이 저한테 운명이 되었나 보네요. (웃으면서)
저는 솔직히 처음부터 이 사업을 내가 크게 만들겠다고 해서 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하다 보니까 오늘 날에 이렇게 사업이 커지나 봅니다. 저는 원래 꿈이 소박하거든요. 지금도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왔고, 외형적으로도 많이 성장이 되어가고  있는 이제는 우리가 양적인 면에서 질적인 면의 발전에 적극 힘을 쏟아 부어야 될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청결과 위생 쪽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지만, 앞으로 더 신경을 많이 써서 일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소비자들이 안심할 수 있는 식품이 되어야지 만이 우리가 더 깊은 신뢰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서로 신뢰 하고 좋잖아요. 50년 역사의 흥생 양계사업. 이 사업은 이 삼형제가 있으면 앞으로도 더욱 더 “흥생” 이라는 이름처럼 붐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 주요품목
계란 (제품구분별 20여 제품) 흥생유정란, 흥생청국장란, 황토란, 영양숯달걀 外
■ 연혁
1960년 대구 범어동에서 채란양계업 시작
1972년 경산 고산면 (현 시지동) 이전
1985년 영천 고경면 영천흥생농장 설립
1996년 의성 안평면 의성흥생농장 설립
2000년 이마트 협력업체 등록
2003년 대구 G.P 확장 및 설비 확충
2004년 대구백화점 지정농장 및 협력업체 등록
2005년 5월 위해요소 중점관리제도 HACCP
 (Hazard Analysis Critical Control Point) QA국제인증 획득
2005년 5월 경주 내남면 소재 55만수 농장 인수 및 추가 설비 착공
 (방사란 및 특수란 전문 농장)
2006년 1월 CJ 푸드시스템 영남권 식당용 계란 납품
2008년 12월 로하스 인증

He specialized in law but he is not a lawyer. He is good at in painting. But he is not an artist. Then, what is he? What is he doing? Well, he is a farmer. It is so amazing, isn’t it? He has a poultry farm and has run for nearly 20years. And his name is Mr. Lee, Hyun-Chang, a CEO of Heung-Saeng poultry farm.
There are three brothers in his family, the eldest is Mr. Lee, Hyun-Chang, the second is Mr. Lee, Hyun-Seok and the youngest is Mr. Lee, Hyun-Jik, both of them are farmers. They all have poultry farms which are inherited from parents. In fact, this Hyeung-Saeng poultry farm has a history of over 50 years. It has been started since in 1960, their grandpa era. At that time, their grandfather has raised chickens as a sideline. After that their parents do this farm work continuously. At Mr. Lee, Hyun-Chang’s parents era, poultry farm work is really difficult to do. It is needed to do manual labor. So, her parents did not want them to do this poultry farm work. They want them to be more successful in life. But both of the three brothers are doing this work now.
When they graduated from university, they do not have any work to do suitable. Also they don’t want to do work under somebody. So the eldest brother, Mr. Lee, Hyun-Chang, decided to do poultry farm  work.
In 1990, there were some changes in poultry farm work. Before 90’s century, poultry farm work is a kind of manual labor. But in 1990, it has been changed into mechanization. So, it is not so difficult to do.
In 1998, Mr. Lee, Hyun-Chang moved to Uiseong and he started doing this work in earnest. Nowadays, it was a quite big business in Daegu and Kyeong-Buk. There are 500,000 chickens in poultry farm which is in Uiseong. And there are two more poultry farms in Gyeong-Ju and Yeong-Chung, each of them are managed by the other two bothers. They are doing egg delivery, egg distribution and egg production.
Nowadays, ‘eggs’ are not anymore agricultural products. Now it is changed into food. So, it is necessary to be more clean and hygenic. In these farms, they are using high quality machines which are from Germany, good quality feed for poultry. Also they focus on making more hygenic environment. Because of this reason, there are so many cooperative firm such as; E-mart, SHINSEGAE DEBEC, CJ Food System, Nong-Hyup Hanaro Club, Everland Resort, Our Home and Food Merce.
In the future, Mr. Lee, Hyun-Chang said, “we need to focus on production of more hygenic eggs for customers rather than focus on extending our farm. I love this work and I think poultry farm work is not just a job-it’s a vocation too fo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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